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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5 14:15

우선 스톡홀름 증후군에 대해서 먼저 알아봅시다.


스톡홀름 증후군 [Stockholm syndrome]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도 한다. 인질사건에서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인질범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오히려 자신들을 볼모로 잡은 범인들에게 호감과 지지를 나타내는 심리현상을 말한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은행에 침입한 4명의 무장강도가 은행 직원들을 볼모로 잡고 6일간 경찰과 대치한 사건에서 처음 관찰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처음에는 인질들도 범인들을 두려워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그들에게 동화되어 자신들을 구출하려는 경찰들을 적대시하고, 사건이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강도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심리현상을 말한다.
심리학자들은 인질사건과 같은 극한상황에 처하게 되면 강한 스트레스와 두려움으로 인해 인질범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 것을 오히려 고맙게 여겨 차츰 그들에게 온정을 느끼게 되고, 결국은 자신을 구출하려는 경찰들에게 반감까지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771453>


스톡홀름 증후군에 대한 많은 예가 있겠지만,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 거론되는 한 인물이 있다.
미국 허스트(Hearst)가의 상속녀인 퍼트리샤 허스트(Patricia Hearst)는 일련의 무장 단체에 납치되었다가
도리어 그들에 동조되어 행동을 같이 했던 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책갈피 속의 오늘]1974년 美극좌파, 허스트家상속녀 납치
 
 
“삶이란 총을 똑바로 쏘는 것이다.”
SLA(Symbionese Liberation Army). 일명 ‘공생(共生) 해방군’. 미국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좌파. 총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아나키스트들의 집단이다.

단원은 12명 정도로 동네 반상회 수준이었다. 그러나 SLA는 하루아침에 전국적인 유명 단체로 떠오른다. 1974년 2월 7일 버클리의 한 라디오방송국에 보낸 편지가 발단이다. “퍼트리샤 허스트는 우리의 보호 아래 있다.”

19세인 퍼트리샤 납치는 단순한 유괴가 아니었다. 영화 ‘시민 케인’의 실제 모델인 신문왕 윌리엄 허스트의 손녀. 미국 최대 신문재벌의 유일한 상속녀였다.

정치테러범답게 요구도 거창했다. 무산계급에 재산을 분배하라는 것이다. 허스트가(家)는 빈민가에 수백만 달러의 식료품을 나눠줬다. 산하 신문들은 납치 명분을 설명하는 광고도 실었다. SLA의 승리로 보였다.

인질 퍼트리샤의 감화는 보너스였다. ‘스톡홀름 증후군.’ 집으로 돌아가길 거부했다. 테러범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했다. 돈 많은 부모를 부정하고 이름까지 바꿨다. 체 게바라의 애인에게서 따온 ‘타냐’가 새 이름. 정식 단원이 되어 총까지 들고 나서 은행도 털었다.

문제는 대중의 반응이었다. 빈민층의 열광을 기대했으나 돌아온 건 납치범 취급. SLA는 규합세력도 없이 도망 다니기에 바빴다. 나중엔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생계를 위해 강도짓을 했다. 시골 양장점에서 옷을 훔쳐 입는 신세가 됐다.

1974년 4월 샌프란시스코 은행 습격은 궤멸의 서막이었다. 길 가던 임신부를 총으로 쏴 숨지게 만든다. 민심은 등을 돌렸다. 잔학한 살인자의 낙인. 592일의 기나긴 도주 길에 오른다.

끝 역시 처참했다. 1975년 여름 총격전 끝에 6명이 사살된다. 퍼트리샤는 현장에서, 나머지는 이후 차례로 붙잡혔다. 마지막 도망자마저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체포됐다.

SLA는 처음부터 실패자였다. 단원 대부분은 1960년대 히피 사상에 경도된 백인 중산층. 새로운 경쟁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무력감을 테러로 표출했다. 총을 똑바로 쏘긴커녕 들 자격조차 없었다.

승리자는 퍼트리샤였다. 21개월 만에 가석방되고 2001년 복권된다. 경험을 책으로 펴내고 영화도 찍었다. 정치 테러 가담을 철없던 시절의 실수담으로 만들 만큼 그에겐 돈이 많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위의 기사는 일간지에 난 것 치고는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선정적인 표현이 많아서 파란만장해 보일지는 모르나 보기에 껄끄러운 부분이 많다.

wikipedia 의  Patricia Hearst 항목을 요약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1974년 2월 4일, 19세의 퍼트리샤 허스트는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SLA 에게 납치되었다.
퍼트리샤를 납치한 후 SLA는 수감중인 SLA 단원과 허스트의 교환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였고,
이에 SLA는 허스트가에게 퍼트리샤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가난한 캘리포니아 사람들 전체에게 각각 70달러 어치의 식료품을 나눠주라고 요구했다.
이 요구는 합산해 볼 때 약 4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 규모였다.
허스트의 아버지는 즉시 600만 달러 어치의 식료품을 해안지역(Bay Area)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줬지만,
SLA는 나눠준 식료품의 품질이 열악했다고 판단하여 퍼트리샤를 풀어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로부터 2달 후인 1974년 4월 15일에 샌프란시스코의 Hibernia 은행 선셋지점에 강도로 침입하여 라이플을 들고 있는 퍼트리샤의 모습이 사진에 찍혔다.
그 후 퍼트리샤는 1975년 9월에 다른 SLA 단원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아파트에서 채포되었다.
 
1976년 1월 15일부터 시작된 재판에서 퍼트리샤의 변호사는 그녀가 감금된 상태에서 물리적이고 성적인 학대를 받았고
세뇌와 스톡홀름 증후군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은행 강도는 협박과 강요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퍼트리샤는 은행강도 혐의에 대한 유죄가 인정되어 7년형을 구형받는다.
이후 지미 카터에 의해 감형되어 1979년 2월 1일, 21개월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출소하였다.

<출처 :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Patricia_Campbell_Hea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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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리샤 허스트가 SLA 동료와 함께 1974년 4월 Hiberina bank에 침입한 사진들
< 출처 : wikipedia.org http://en.wikipedia.org/wiki/Symbionese_Liberation_Ar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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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A 단원으로 가입한 후의 퍼트리샤 허스트
< 출처 : wikipedia.org http://en.wikipedia.org/wiki/Symbionese_Liberation_Ar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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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검거된 후 TIME 지 표지에 나온 퍼트리샤 허스트의 사진
< 출처 : wikipedia.org http://en.wikipedia.org/wiki/Symbionese_Liberation_Army>




이후의 삶 :

출소한 후에 퍼트리샤는 자신의 보디가드였던 버나드 쇼(Bernard Shaw -_-;; 이름이...)와 결혼하여 코네티컷 윌튼에 살고 있고 두명의 딸을 낳았는데, 그 중 한명은 모델로 활동중이라고 하네요.

퍼트리샤는 1982년 "Every Secret Thing" 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출간했고, 이후 이 책의 내용은 "Patty Hearst"란 제목으로 1988년에 영화화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에 작은 역할들도 대략 10편이 넘는 영화에 배우로도 출연했구요.
( 출처 : IMDB http://imdb.com/name/nm03725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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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irty Shame" 에 출연중인 퍼트리샤 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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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Icon TP | 2007/05/15 14: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해하긴 힘든 상황이군요.. -_-ㅋㅋ
재밌게 읽고갑니다~
BlogIcon 티북 | 2007/05/15 16:32 | PERMALINK | EDIT/DEL
네...독특한 인물이고 상황이긴 하지요. 퍼트리샤 허스트가 SLA에 동조한 이유는 추측컨데... 그들의 주장에 동조되었거나, 동아일보 기사에서처럼 인질범과 일련의 감정적 교감 (눈이 맞았단 거죠. ^^)이 있었거나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자서전을 읽어본게 아니기 때문에...추측해볼 수 밖에 없네요. 어느 것이 먼저일지도 알 수 없는 일이구요.) 어쨌거나 이후에도 보디가드와 결혼하고 영화계를 비롯한 여러곳에 얼굴을 비추는 것을 보면, 감정적으로 안정적인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패리스 힐튼하고 비교할 수 있으려나요. ^^
여리 | 2007/05/15 19: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폴더명이 '인생극장'이란게 너무 재밌어요 ㅋㅋㅋ
taskbook | 2007/05/16 02:41 | PERMALINK | EDIT/DEL
^^ 현실이 더 극적인 법이죠. 운명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니까요.... ㅎㅎ 너무 거창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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